We Don’t Know How To Cry
2025
11'40", HD video, Black and white, 5-channel audio
Starring Chaeyoung Lee, Sunim Kim
Translation Yujin Cho
Audio installation support Nicolas Hoffmann, Quirin Brunhuber
Liew Niyomkarn - "feel like liquidity"
Thanks to Jihwan Suh
2025
11'40", HD video, Black and white, 5-channel audio
Starring Chaeyoung Lee, Sunim Kim
Translation Yujin Cho
Audio installation support Nicolas Hoffmann, Quirin Brunhuber
Liew Niyomkarn - "feel like liquidity"
Thanks to Jihwan Suh
Eng
Chaeeun Lee, through her work We Don’t Know How to Cry (2025), poses a bold and provocative question: Is true understanding of the Other possible? As novelist Milan Kundera once noted, “The age of universal deafness and incomprehension will have arrived.”1 Yet, Lee does not abandon the pursuit of understanding. Extending from her previous sound installation First Wing (2023), this video work derives meaning in relation to it.
A Therian is someone who identifies with or believes they share a connection with a non-human animal. In First Wing, Lee explored their identity struggles, self-expression, and views on the Other and nature. However, the nature in her work is not untouched or unfiltered. It is reconstructed through her own artistic method.
If understanding is inherently confined to the subject’s perspective, does this mean true understanding is impossible? We Don’t Know How to Cry begins at the point where understanding collapses and reveals itself as unattainable.
Yet, affirming this impossibility does not negate the attempt. Instead, it must be seen as a steadfast devotion to the act of trying: a fundamental principle of coexistence. As Martin Heidegger observed, “here” is understood only in relation to “there,” and returning from one to the other2 is how understanding unfolds. The attempt to grasp the Therian leads through birds and ultimately returns to humans, to the self. The effort to comprehend the other inevitably brings the subject back to itself. Here, Lee underscores that understanding is fundamentally confined to perspective and, therefore, cannot exist without misunderstanding.
The impossibility of understanding, the act of attempting, inevitable failure, and reattempt: these themes unfold through the video’s ambiguous narrator. The imagery, magnified to an extreme degree, mirrors the narrow, tapered viewpoint of a subject unable to fully perceive the Other.
We attempt to define this narrator, a being that seems both avian and human. However, as noted earlier, this is impossible. Even if one were to succeed, such a definition would deliberately omit what remains undefined, relying on misunderstanding. For the narrator does not exist as a fixed entity but oscillates between the bird and the human. As it moves between the Other and the Self, we too shift between seeing it as the Other and recognizing it as part of ourselves. Within this shifting interplay of unstable and deconstructive imagery, paradoxically, meaning emerges.
The effort to understand the Other, though ultimately impossible, still holds the possibility of coexistence. This is precisely where Lee’s work derives significance, borrowing the classical question-and-answer structure to expose the contradictions within understanding.
The music which is wavering, incomplete, and imperfect drifts in like a dream. Much like the structure of reality and dreams, the latter reflects the former but never fully encapsulates it. Instead, dreams distort and exaggerate. This structure becomes particularly significant when scenes of shadow play and vocalized sound overlap, punctuated by ambiguous birdsong. It leaves us to wonder, Is this truly the sound of a bird? Holding this question in the back of our minds, we find ourselves exposed: unprotected, before the work itself.
Then, despite this vast impossibility, what keeps us lingering at the threshold of the Other? Perhaps, as mentioned earlier, it is affection or love. Just as the beginning and end of the video parallel each other, the attempt to equate the Other with the Self, and its inevitable failure, ultimately brings us back to what we know best: ourselves. And alongside us, the Other, with whom we coexist. Thus, the question posed at the outset “Is true understanding of the Other possible?” finds its response: It is not. However… In this hesitation, in incompletion, Lee’s video work finds its meaning.
1 Milan Kundera, The Book of Laughter and Forgetting (1979)
2 Martin Heidegger, Being and Time (1927).
Text Jihwan Suh
Kor
이채은은 <우리는 우는 방법을 모른다> (2025)를 통해 도발적이며 동시에 대범한 질문을 화두에 던진다. ‘타자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밀란 쿤데라가 언급한 것처럼 ‘전 세계적인 난청과 몰이해의 시간이 도래’1 하는 세상에서 이채은은 이해의 시도를 놓지 않는다. 이 영상 작업은 이전의 음향 설치 작업인 <First Wing> (2023)의 연장 선상에 놓여 이해될 때 비로소 의미를 확정할 수 있다. 테리언(Therian)은 자신의 영혼의 일부가 동물(이라고 믿는)인 사람 일반이다. 이채은은 <First Wing>에서 테리언들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 자기 표현, 타자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주목하여 ‘자연’을 표상했다. 그렇지만 이 ‘자연’ 은 이채은의 방식대로 ‘재조립된 자연’이다.
만약 이해라는 행위 자체가 이해를 시도하는 주체의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갖는다면 진정한 의미로써의 이해는 불가능한 것일까? 이채은의 <우리는 우는 방법을 모른다>는 바로 이 지점, 이해가 처절히 실패하고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는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한다.
이해의 불가능을 긍정하는 것은 이해의 시도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불가능에 대한 긍정은 이해의 시도에 기꺼이 머무르는 견고한 애정, 공존에 대한 열망의 코드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특기한 것처럼, ‘여기’ 는 ‘저기’에 기초하여 이해되며, 그 ‘저기’에서 ‘여기’로 돌아오는 것은2 테리언에 대한 이해의 시도는 테리언과 새를 지나 인간, 즉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게 된다. 타자에 대한 이해의 시도는 오히려 이해를 시도하는 주체로 귀착된다. 이채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이해는 근본적으로 주체의 시각을 벗어날 수 없으며, 따라서 몰이해와 동시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환기한다.
앞서 논의된 이해의 불가능성, 이해의 시도, 근본적 실패와 재시도는 영상 작업의 모호한 화자를 따라가며 변주된다. 무언가를 크게 확대한 듯한 영상은 타자의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하지 못 하는 편협한 주체의 시각을 닮았다.
우리는 새와 인간의 특성을 모두 가진 것 같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화자를 규정하려고 시도하지만 앞서 지적한 것처럼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며, 혹여 규정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규정되지 않은 것의 특성을 애써 무시한 몰이해에 기반한 것이다. 왜냐하면 화자는 테리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와 인간이기 때문이다. 테리언이 새-타자-와 인간-주체-을 오가며 말하는 동안, 우리는 테리언-타자-와 우리-주체-를 오가게 되는데, 불규칙하며 불분명한 해체적 이미지의 이중구조의 변주 속에서 역설적으로 의미를 확정하게 된다.
공존을 위해서 시도했던 타자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지만 이해의 시도 자체에 공존의 가능성이 있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이채은은 이러한 지점에 이르렀을 때 작업 내에서 문제-정답의 고전적 문제 풀이 방식을 빌려 작업적으로 말하고 있다.
끊길 듯 끊기지 않는, 불완전하게 울리는 음악은 영상 속에서 꿈결처럼 다가온다. 현실-꿈의 구조처럼 꿈은 현실의 반영이지만 현실을 모두 담지 않는다. 꿈은 오히려 원형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재해석에 가까운 것이다. 이 구조는 그림자 놀이를 하는 장면과 누군가 소리를 내고 있는 장면이 중첩되는 지점에서 새소리가 들리는 것을 의미심장하게 만든다. ‘이 소리가 정말 새소리가 맞는가?’ 에 대한 의문을 한 켠에 품은 채로 우리는 무방비하게 작업 앞에 노출된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대상에게 머무르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앞서 잠시 언급했던 것처럼 애정이나 사랑일 것이다. 영상 작업의 시작과 끝이 비슷한 것처럼, 타자와 주체의 동일화에 대한 시도와 필연적인 실패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가장 잘 알 수 있는 존재인 우리이다. 그리고 우리와 공존하는 타자이다. 작업을 통해 우리가 가장 먼저 접했던 질문인 ‘타자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가능한가?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이 지점에 이채은의 영상 작업은 의미를 갖는다.
1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1979)
2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1927)
글 서지환